역사투어

도산공원

도산공원 -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도산 안창호)
도산공원은 1973년 11월 10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소를 이장하여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합장하면서 개원하게 되었다. 공원 내에는 도산 선생 동상, 어록비, 비문해설기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3월 10일 이 곳에서 흥사단 및 도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도산 선생 추모 기념행사가 열린다.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20 도산전시관
지번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49-9
이용정보
이용시간 00:00 ~ 24:00
이용요금 무료
대중교통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
버스 간선 141, 145, 440
지선 3011, 4212
관련정보
서울의 산과 공원 > 도산근린공원
대한민국 구석구석 > 도산공원
2016년 MBC 무한도전 <도산을 찾아서>편을 통해 잊혀져 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이 주목 받은 바 있다. 37년 간 이동거리 4만km, 12개국 120여 개 도시를 다니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생은 후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은 감동과 함께 숙연함을 불러일으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개항 직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약관의 나이로 독립협회에 참여한 이래 평생을 조국에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문을 받아들이는 한편 교포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를 만들기도 했던 선생은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귀국, 이갑,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신민회>를 조직하고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 관련 혐의로 곤욕을 치르다 미국으로 망명,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 초대 총회장에 취임하고 기관지 <신한민보>를 창간했다.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 조직에 참여, 내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노동총장 등을 역임했고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1924년 다시 미국으로 망명, 흥사단 조직 강화에 힘썼다. 1926년에는 상해에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한 전진기지 건설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며 실패했고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폭탄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 2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철학은 교육을 중심으로 한 국민운동을 통해 자주 독립을 이룩하자는 <민족개조론>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지금도 무실역행(務實力行 : 공리 공론을 배척하며 참되고 성실하도록 힘써 행할 것을 강조하는 사상)을 중시하는 흥사단 정신을 이어가는 후손들이 많을 정도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2002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프리웨이에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 2004년 '안창호 우체국'이 생겼으며 2012년 1월 애틀랜타 마틴루터킹센터 내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헌액되었다. 남가주대 한인연구소엔 안창호 선생의 가족이 살던 자택이 복원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