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 잠실운동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대상 : 그해 겨울

2019.12.18 | 관리자
조회 1433

 

이 름

제 목

그해 겨울

작품요약

2013년 그해 겨울, 부장님이 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그해 겨울>이라는 박정현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그 계기로 함께 갔던 직장 상사인 정과장님과 운명적인 인연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특별한 날이나 현실에 지칠 때면 그날의 감정을 떠올리기 위해 잠실실내체육관을 찾는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장소에는 항상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을 품었다 떠나보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도, 그곳에는 저마다의 설렘과 이야기가 오롯이 스며있다. 2013년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 잠실실내체육관에서의 추억은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또렷이 기억되고 있다.

당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나의 일상은 변화 없는 멜로디처럼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저 일에만 파묻혀 매일을 보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따금씩 친구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 관람만이 유일한 낙이었을 뿐이다.

야근에 지쳐있던 어느 날, 힘내서 일을 하라며 부장님이 콘서트 티켓 두 장을 건네주었다.

김 대리, 혹시 박정현 좋아해? 나한테 박정현 콘서트 티켓이 두 장 있는데, 콘서트 보러 가서 에너지 좀 충전하고 와~.”

어머~ 정말이요? 정말 감사해요, 부장님

기쁜 마음에 받아든 티켓은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박정현과 YB밴드가 함께 하는 공연 티켓이었다. 횡재라도 한 듯 기뻐서 부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순간,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정 과장님이 부러운 듯 나에게 한마디 툭 건넨다.

김 대리는 공짜 티켓이 생겨서 좋겠네. 나도 박정현 좋아하는데.”

그러자 입장이 조금 난처했는지 부장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정 과장도 박정현 콘서트를 가고 싶어 하는지 몰랐네. 그럼, 김 대리가 조금 양보해서 정 과장이랑 콘서트를 같이 보러 가면 안 될까? 대신 정 과장은 김 대리한테 맛있는 것 좀 사주고. 내 입장에서는 똑같은 부하 직원인데, 티켓을 누군 주고 누군 안 주기가 좀 뭣 하네. 하하하.”

부장님의 부추김이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솔직히 싫지는 않았다. 직속 사수인 정 과장님에게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 과장님은 입사 초기 실수가 잦았던 나를 감싸주기도 하고, 남몰래 챙겨주기도 할 만큼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티내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묻는 정 과장님의 말에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면서 과장님이 좋으시다면 전 상관없어요!”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콘서트를 관람하기로 확정하고 나자, 이번엔 정 과장님이 날짜와 장소를 묻는다.

김 대리~ 날짜가 언제에요? 장소는요? 티켓 한 번 확인해 봐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티켓을 확인해보니 ‘1224일 오후 730분 잠실실내체육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뜻밖의 콘서트 데이트. 그것도 평소 호감이 있던 정 과장님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이브라니. 심장이 콩닥콩닥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필연은 우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고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들려오는 듯 했다.

콘서트 며칠 전부터 나는 평소에 관심도 없던 미용 팩을 얼굴에 붙여보고, 그날 입을 의상을 고르러 백화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아왔다. 20131224일 크리스마스이브, 콘서트 당일에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서투른 솜씨로 화장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우리는 잠실실내체육관 근처에서 만나 이른 저녁을 함께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파스타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분명했던 것은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입은 평상시 복장과는 달리 캐주얼한 복장을 한 정과장님의 모습에서 한층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설레는 감정을 한가득 품고 들어선 잠실실내체육관에는 12월의 차가운 겨울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훈훈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1, 2, 3층을 꽉꽉 채운 관객들과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젊은 연인들의 얼굴에는 설렘 가득한 웃음이 넘쳐흘렀다. 친구들과 함께 수차례 와봤던 잠실실내체육관의 모습이 그날따라 왜 이리도 낯설어보이던지. 콘서트 무대는 마치 나를 위한 무대 같았고, 겨울나무로 꾸며놓은 무대 장식 위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번져 나오는 듯 했다.

콘서트가 시작되려는 찰라, 정 과장님이 추울 때 쓰라며 핫팩을 건네주었다. 따스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갑자기 체육관을 비추던 불이 꺼지고 장내가 조용해진다. 그에 따라서 내 심장도 두근대기 시작했다. 첫사랑이란 주제에 맞춰 미니드라마가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고, 중간 중간 박정현과 YB밴드가 명곡들을 불렀다. PS I Love You, 사랑Two, 꿈에, 너를 보내고, 잊을게 등의 노래가 잠실실내체육관에 울려 퍼지며 금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올랐다. 가수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콘서트장. 열창하는 가수의 진솔한 마음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잠실실내체육관에 모인 관객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넓디넓은 잠실실내체육관이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았다. 콘서트에 집중하랴, 과장님을 의식하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는 과장님의 옆모습에 어찌나 설렜는지. 잠실실내체육관에서의 이 황홀한 시간이 그대로 멈추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박정현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통할 수 있는 요인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었던 셈이었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 나는 감정이 꽤 고조되어 있었다. 무언가 우리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느끼며 콘서트의 엔딩까지 함께 했다.

김 대리, 이대로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데 우리 카페에 가서 차 한 잔 할래요?”

공연이 끝나고 잠실실내체육관을 걸어 나오는데 과장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카페를 찾아들어가 주거니 받거니 콘서트에 관한 대화를 나누어보니 취미나 성향이 꽤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세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불편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과장님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가더니 장미꽃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카페로 들어왔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과장님은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며 고백을 해왔다. 오래 전부터 내게 호감을 가져왔다면서.

우리는 그날 콘서트 데이트를 계기로 연인이 되었고, 다음해 1224일 과장님은 잠실실내체육관 콘서트장에서 내게 가슴 뭉클한 청혼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우리는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잠실실내체육관은 우리를 이어준 사랑의 징검다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날 그 공간에서 서로에게 집중했던 시간이 우리를 운명으로 짝지어준 셈이었던 것이다.

결혼 후 집들이 때 술에 취한 부장님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평소 나를 마음에 둔 남편이 술자리에서 부장님께 고민을 털어놓았고, 부장님이 아이디어를 내서 콘서트 데이트가 성사되었다는 것을. 부장님이 내게 준 박정현 콘서트 티켓은 사실 우리 깜찍한 과장님이 구입한 티켓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 대리, 혹시 그거 알아? 옛날부터 정 과장이 김 대리 엄청 좋아했어.”

부장님의 폭탄선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남편이 말했다.

여보! 그해 겨울, 잠실실내체육관은 참 따뜻했어. 그렇지?”

우리는 올해로 결혼 6주년을 맞이했다. 결혼 후 남편은 특별한 기념일이나 내가 육아에 힘들어할 때마다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하는 콘서트 티켓을 끊어 선물하곤 한다. ‘잠실실내체육관 가자라는 말은 우리 부부에게 기분 전환을 위해 데이트 하러 가자는 말과 같다. 우리를 연결해 준 잠실실내체육관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내 삶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잠실종합운동장 일대가 도심형 스포츠문화 콤플렉스로 리모델링돼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부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잠실운동장이, 앞으로 시민들을 위한 여가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찬란한 추억을 선물하는 소중한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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