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 잠실운동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우수상 :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

2019.12.18 | 관리자
조회 1084

이 름

제 목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

작품요약

어린시절, 중등시절, 20대 청춘, 30대 엄마가 된 시기를 거치는 동안 잠실경기장은 나에게 결정적인 추억을 한 가지씩 선물했던 곳이었다. 그 추억들을 회상하면 시대가 함께 읽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일상이 읽힌다. 잠실경기장은 그런 곳이다.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

 

지금이야 전 세계가 내 손 안에 있지만,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어릴 적에는 사는 동네가 내 세계의 전부였다. 학교와 교회, 문구점과 분식집을 오가며 딱 그만큼의 삶을 영위하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국가적이라거나 사회적인 일 따위가 내 생활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88올림픽은 우리나라와 세계의 여러 국가들에 대한 존재를 실감하게 해준 첫 경험이었다. 그 즈음하여 나는 호돌이와 오륜기, 올림픽공원 그림이 새겨진 칸나공책을 사용하며, 가보지 못한 그곳을 공책을 꺼낼 때마다 눈에 새겨 넣었다. 캐릭터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호돌이는 우리에게 가장 특별한 캐릭터였고, 올림픽공원은 전 세계의 색깔과 소리를 온전히 품고 있는 하나의 도가니였다.

나는 하늘에서 찍은 잠실 경기장 사진을 보면서 자동차 타이어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에는 경기장의 굴곡이 주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열 살 남짓한 어린 아이였지만 올림픽의 장면들은 흥미와 긴장, 안타까움과 환호의 감정을 자극하였고, 나는 그 다채로운 감정들을 올림픽 경기장의 넓은 공간 안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그렇게 각인된 이미지였기에 올림픽 경기장은 나에게 강렬하고 복합적인 상징으로 기억되었는데,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라면 연대감, 경쟁과 화합, 간절함과 열정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할 만한 것들이다.

칸나공책 사진으로 보았던 올림픽 경기장을 직접 가 본 건 올림픽이 끝나고 4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시간은 나를 질풍노도의 중학생으로 성장시켰고, 나는 나의 우상을 쫓으며 그 시절의 허기를 달랬다. ‘희야를 부르는 가수 이승철의 절규에 함께 절규하던 시절, 나는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내 생애 첫 콘서트를 맞이하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서울 촌년이었던 내가 의지할 친구 하나 없이 올림픽 공원까지 찾아갔던 건 그 또래에게만 허용된 분별없는 용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오륜기가 새겨진 올림픽공원의 정문 앞에 섰을 때의 복합적인 심정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혼자 이곳까지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 곧 있을 콘서트에 대한 설렘, 올림픽 공원의 압도적인 규모가 주는 긴장감. 그 순간 나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감정들을 받아들이느라 잔뜩 상기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안내도만 보고는 목적지를 찾지 못해 종종거리며 올림픽공원을 왔다 갔다 했던 장면이다. 그렇게 헤매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면한 원형의 펜싱경기장. 그 주변은 콘서트를 보러 온 이들의 현수막과 소품들로 화려했고 또한 번잡했다.

펜싱경기장은 안에서 보아도 바깥 모양이 그대로 그려질 만큼 내부와 외부에서 느껴지는 공간의 느낌이 동일했다. 무대를 중심으로 수렴과 발산을 반복하는 열기가 원심력과 구심력에 의해 작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펜싱경기장을 가득 채운 소리와 색채들 속에서 감정의 폭발과 수렴을 경험했다. 그곳은 나의 우상을 처음으로 대면한 자리였고, 내 안에 존재하는 온갖 색채들의 감정을 마주한 특별한 공간이기도 했다. 장소는 항상 추억과 함께 의미를 남기고, 주관적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니, 15살의 나에게 올림픽공원은 그런 곳이었다. 질풍노도의 함성을 품어주는 공간.

그 이후, 올림픽경기장을 찾은 건 십여 년이 지난 후였다. 그 시기를 기억해보면 직업을 갖고 돈을 벌게 된 나이, 사랑하는 연인이 생겨 주말이면 그와 함께 시간을 나누던 때였던 것 같다. 인라인스케이트 열풍이 한창이었던 때라 우리도 남들처럼 인라인스케이트를 마련했다. 운동을 전혀 즐기지 않는 스타일이었지만 그와 함께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풋풋한 시기였다. 처음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날, 나는 올림픽경기장에 갈 것을 제안했다. 십여 년을 간직해두었던 기억 속의 장소에 새로운 추억을 보태고 싶은 마음, 맘껏 즐기지 못했던 올림픽공원 곳곳의 모습을 새로이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는 경기도 서쪽 끝에 살고 있었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기꺼이 잠실까지 갔다. 장소는 추억을 선사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곳을 선택했고, 청춘의 기억 속에 올림픽공원을 새겨 넣었다.

맨투맨 셔츠 한 장을 입었던 계절이니 초가을로 접어드는 9월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각자 올림픽공원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곳을 거닐었는데, 가을날 주말이어서인지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이 참 많았다. 곳곳에 위치한 안내판을 살피고 건물과 시설물들을 제대로 둘러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닐다보니 사람들이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는 넓은 공간이 나와, 우리도 그곳에서 인라인스케이트로 갈아 신었다. 멋스럽게 외발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고, 여러 스타일의 보드들도 활주하고 있었다. , 올림픽공원의 일상은 이런 모습이구나.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편안하게 누리는 곳, 비슷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계획 없이 모여 서로의 특기를 나누고 공유하는 공간,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상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사실 운동 감각이 없는 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금세 벗어던졌다. 발이 너무 아팠고, 두세 번 넘어지고 나니 불안을 감수하고 그것을 즐길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래도 그곳이 올림픽공원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곳은 아무 준비 없이도 즐길 거리들이 많았고, 일상의 건강함을 꿈꾸는 자들이 그 기운을 나누어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게 되면 아이와 함께 자주 오자는 말을 그에게 건넸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십여 년이 흐른 뒤,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그와 둘이었던 우리는 아들내미까지 셋이 함께가 되었고, 인라인스케이트 대신 유아용 씽씽카를 끌고 그곳을 활주하는 여러 바퀴들 속에 합류했다. 경기장에서 올려다 본 화창한 하늘이 좋았고, ‘진짜 넓다를 연발하는 어린 아들의 호기 어린 음성이 좋았다. 나는, 30년 전 즈음 이곳에서 전 세계인이 모이는 올림픽이 있었다는 사실, 25년 전 엄마가 어느 가수에 열광하여 콘서트 장을 찾아 이곳을 헤매고 다녔다는 이야기, 10여 년 전 아빠와 엄마가 이곳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웠다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 이야기는 다섯 살 된 아들이 결코 실감할 수 없는 시간과 문화에 대한 것들이었음을 알면서도 그저 내 흥에 겨워 이야기할 뿐이었다. 십년 후 내 아이도 누군가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여기 올 수도 있을 텐데, 혹은 나란히 걷는 연로한 부부들처럼 남편과 나도 이곳에서 노년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올림픽공원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포개어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아이와 함께 했던 소풍을 통해, 올림픽공원이 선사한 추억은 가족, 어울림, 웃음, 즐거움과 같은 키워드로 각인되어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의 역사 속에 또 하나의 기억을 남겼다.

나에게 올림픽공원은 시간의 흔적이며, 핵심 사건이 이어지는 경험의 보고이다. 그곳을 통해 어린 나는 국가와 사회의 존재감을 느꼈고, 질풍노도의 나는 열광과 함성의 도가니에 빠져들었으며, 청춘의 나는 평화와 여유를, 엄마로서의 나는 따뜻한 어울림을 경험했다. 어느 세대도 소외시키지 않고 품어주는 올림픽공원의 다채로움은 개인의 역사 곳곳에 등장하여 인간과 문화, 삶에 대한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앞으로도 올림픽공원이 그런 의미로 보존되기를, 그리고 우리 삶의 공간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곳에서 새겨 넣고 싶은 기억들이 여전히 많고, 올림픽공원에서의 추억은 내 아이들과의 교집합을 넓혀줄 매개가 될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올림픽공원은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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