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 잠실운동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우수상 : 세대와 세월의 간극을 이어주는 장소

2019.12.18 | 관리자
조회 1081

 

이 름

제 목

세대와 세월의 간극을 이어주는 장소

작품요약

장애인인 아버지는 불편함을 감수하시면서 저를 잠실야구장으로 데려가 야구경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잠실야구장은 저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저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 가곤 합니다.

 

잠실야구장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특별한 장소다. 그 시절 아버지는 잠실야구장에서 내게 꿈을 향해 달려가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는 잠실야구장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배웠다.

아버지는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는 절단장애인이다. 30여 년 전 사료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료 섞는 기계에 다리가 빨려 들어가 오른쪽 무릎 하퇴부가 절단되었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무렵 철이 없던 나는 의족을 착용하고도 절뚝거리는 아버지를 창피하게 느낀 적이 있었다. 혹여 친구들이 아버지와 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했고,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우리 곁으로 오기라도 할 때면 창피한 마음에 집으로 얼른 뛰어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와 외출하는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었다. 사고 전까지만 해도 살갑던 아버지와 내 사이에는 대화가 줄어들었고, 아버지와 한 공간에 있을 때에도 그저 아버지의 얼굴만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주말이었다. 아버지가 할 일 없이 서성이고 있는 내게 외출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난 아버지와의 외출이 내키기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간곡하게 부탁하듯 말하는 아버지의 설득에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어디에 가는지도 모른 채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아버지를 앞서 가기도 뭣해 한 발짝 떨어져 조용히 뒤따라갈 뿐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잠실야구장이었다. TV를 통해 야구 경기를 볼 때 환호성을 질렀던 내 모습을 기억하셨던 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아들인 나를 위해 야구장에 가셨던 것이었다.

내가 잠실야구장에 푹 빠져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사이, 아버지는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맞서야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 번도 얼굴 찡그리시는 법이 없었다. TV에서만 보던 야구 경기를 실제로 관람하는 기분이란 내가 실제로 야구 경기를 하는 것처럼 들뜨게 만들었다. 야구장 안과 밖을 오가는 사람들의 부산한 발소리, 야구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내내, 내일 학교에 가면 반 친구들에게 잠실야구장에 다녀온 얘기를 자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실운동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용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내 마음을 아셨는지 활짝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순간 나는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아들이 되지 않겠노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날 이후로도 아버지는 종종 나를 야구장에 데리고 가주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철이 들어갈수록 자식을 위해 신체의 불편함과 편견어린 시선을 감내하고 잠실야구장을 방문하는 아버지의 깊은 속내에 감사하고 죄송했다. 한 번은 우리가 앉아 있던 좌석 쪽으로 홈런볼이 날아온 적이 있었다. 홈런볼이 줍기 위해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달려가다시피 했다. 아들에게 홈런볼을 안겨주고 싶었지만 몸이 빠르지 못해 줍지 못하신 아버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고, 나는 그날 아버지의 눈빛에서 진한 사랑을 느꼈다.

야구는 말이야, 9회말 투아웃이 되어도 끝날 때까지는 절대 결과를 알 수 없는 거야. 물론 인생도 야구와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앞으로 살면서 목표로 삼은 게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렴

야구장에서도 돌아오며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은 내가 인생을 살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준 말이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가끔 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 가곤 한다. 나를 닮아 아들 녀석 역시 키즈 카페나 놀이동산에 가는 것보다 야구장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몸이 축 처져 있다가도 야구장에만 가면 여러 사람이 함께 내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힘이 불끈 샘솟곤 한다.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잠실야구장은 세대와 세월의 간극을 이어주는 장소다. 세월을 머금고 한 자리를 지켜온 만큼, 잠실야구장에서는 어떤 강한 힘이 느껴진다. 오늘도 잠실야구장은 바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일상의 짐과 피로를 내려놓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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